잘 못하는 것은 못하는 대로

학교에서 지내다보면 신기한 친구들이 많다. 악기를 잘하는 친구들도 많고 글을 잘 쓰는 친구들도 많다. 그런 친구들을 볼때마다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또 가끔은 그런 친구들을 보다보면 나는 잘하는게 뭘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잘하는 것들 보다는 잘 못하는 것들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못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닌 잘하는 것들 또한 많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잘하는 것들이 다르다. 무언가를 잘 한다는 것은 매우 상대적인 것이다. 만약 한 공간에 각자 한 분야의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에 공통된 분야를 가진 사람들이 더 들어 간다면 그 사람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재능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나보다 뛰어나다고 상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난 재능이 있을 수 있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있을 수 있다. 나는 학교에서는 말을 잘 타는 편이라고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나보다 더 잘 타는 사람들은 많다. 그렇다고 내가 말을 잘 못탄다고 좌절하지는 않는다. 내가 말을 잘 타는지 못 타는지 보다는 내가 말을 탈 줄 안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노력하면 그만큼 더 성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자신만의 재능을 인정해주고 잘 갈고 닦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안되는 게 있다면 또 안되는데로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것 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만의 재능이 있으니.


그게 나니까

사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많이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에 맞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다. 관계적인 면에서 안정적인 것들을 추구하다보니 가끔은 인간관계에서 가끔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인간관계는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야 된다는 틀에 박혀 있을때에는 지금 상황은 왜 이럴까? 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많았다. 

나는 말도 적고 친화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 나는 묵묵히 내 일만 하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러나 학교에는 나와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쓸 때 옆에 있었던 하준이형은 나와 다르게 말도 많고 친화력도 뛰어난 편이다. 물론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이전에 하준이형의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나는 왜 이렇게 말도 적고 사람들과도 그렇게 금방 친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말이 적고 친화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는 내 성격을 인정한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말이 적고 친화력이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말 수가 적은 덕분에 다른 사람들 말을 더 많이 듣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던 때가 적지 않다. 

이처럼 사람마다 성격은 다 다르다. 서로의 관점 또한 다르다. 세상에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보다는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부정적인 관점보다는 긍정적인 관점을 기를 필요가 있다. 인간관계가 부족하다고 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에세이를 읽거나 논문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처방일 뿐일 것이다. 내적인 상처 또는 관점을 바꾸지 않는다면 언젠가 다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임시적인 처방보다는 내적인 치료 또한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서로 성격이 다르기에 불편한 것들도 있지만 또 서로 다 다르기에 살아갈 때에 더 재미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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