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온도, 그리고 시간

그런 날이 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 날. 유독 이불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날. 나의 몸은 굳은 채 부동자세로 눈만 꿈뻑거린다. 맨살에 닿는 이불의 촉감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황홀함이다. 잠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눈을 감아보아도 머릿속엔 우주가 떠도는 듯 잠이 오지 않는다. 이 시간은 온전히 나를 느낄 수 있다.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오롯이 나로 남는 시간. 오늘따라 가벼운 몸을 일으켜 나는 창문을 열어본다. 창문 너머 새벽의 향기가 느껴진다. 지금 여기서 나만 느낄 수 있는 새벽의 향기와 새벽의 온도는 나를 더 평안하게 만든다. 

늦은 밤, 골목 계단 가장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 보면,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는 쏟아질 만큼의 많은 별이 각자 자리에서 자신을 빛내고 있다. 밤하늘을 빤히 쳐다보고 눈을 감으면 눈 앞에 별이 서성거린다. 멍하니 별을 보고 있으면 별이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수많은 별들 사이 나에게 유독 잘 보이는 별은 하나 뿐이다. 수많은 별들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쾌한 공기와 선선한 바람은 나의 마음까지 평온하게 만든다.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밤의 분위기는 아무도 모른다. 길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이 적막한 밤이 마음에 든다. 이 밤이 지나면, 새벽은 또 찾아온다. 

나무 위에서 참새들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즐겁게 노래 부르는 아침.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은 익숙하고도 평화롭다. 창문 열면 선선한 바람과 함께 내 방으로 들어오는 아침의 냄새는 하루의 시작을 알려준다. 이슬이 맺혔다가 갔지만 습하다고 할 수는 없는 아침의 온도. 파아란 하늘 아래 자연물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아침은, 오늘도 나에게 찾아온다.이른 아침의 해는 오늘도 하늘에 밝게 떠있다. 분명 멀지만 가깝다고 느껴질만큼 햇빛은 나를 쳐다본다. 누구에게도 느끼지 못한 이 따뜻함과 포근함을 햇빛에게서 느낀다. 어제 저녁에 보았던 별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검은 하늘에 반짝이를 뿌려 놓은 듯 유독 반짝 빛나던 별들은 부끄러운지 모두 햇빛 뒤로 숨은 듯 하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나는 굼벵이처럼 이불에 쏙 들어간 채 미동도 없다. 밤에 열어둔 창문 덕분인지 창문과 창문 틀 사이에는 물방울이 자리 잡는다. 바람 때문인지 물방울이 심심해서인지 물방울은 창문에서 미끄럼틀을 타듯 주르륵 흐른다. 상쾌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내 방으로 찾아와 나를 깨운다. 그럴수록 나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게 이불에 더 깊이 들어가 몸을 구부린 채 눈을 감고 아침을 애써 외면한다.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은 유독 혼자 있는 시간을 바란다. 

아침의 나는 항상 결단이 필요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걱정이 나를 사로잡을 때 나는 나의 시간을 바란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아무에게도 방해 받을 수 없는 그 시간을 바란다. 

혼자 있지 않으면 나는 나를 모른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혼자 있을 때만 완전히 드러낼 수 있다. 누구의 시선을 느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애매한 새벽이 좋다. 아무도 없는 이 새벽이 좋다. 시간과 날씨, 하늘과 바람. 모든 것이 애매하다. 아무도 없는 이 시간에 나는 오롯이 나의 숨소리를 느낀다. 새벽의 숨소리는 평소와 다르다. 더 부드럽게 들린다. 거친 숨소리가 잠시 휴식이라도 취한 듯 편안하고도 여유롭다.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이 시간. 아무도 나를 방해할 수는 없다. 나의 진정한 모습을, 나의 나 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새벽이다. 햇빛도 나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나보다. 파란 하늘 밑 조금씩 보이는 주홍빛 하늘이 나의 시간에 조심스레 자리 잡는다. 비밀스럽게 여명이 밝아온다. 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이 고요한 새벽에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장미

맑게 갠 하늘 아래, 길가에 피어있는 장미가 유독 내 눈에 띈다. 길가에 피어있는 장미는 길가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장미의 매혹적인 색깔과 아름다운 잎은 가만히 있는 장미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아름다운 장미에게도 가시가 있다. 그러나 장미 안에 숨겨진 가시를 많은 사람들이 잘 찾지 못한다. 우리는 자세하게 장미를 관찰해야만 장미의 가시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숨어있는 장미가 가지고 있는 가시의 고통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장미의 가시를 외면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장미의 겉모습만 보고 예쁘다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장미가 가지고 있는 가시는 애써 피한다. 가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장미에게 가시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 장미는 가시로부터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 나타낼 수 있다. 가시는 장미에게 해를 끼치는 벌레가 올라오는 것들을 막아준다. 장미는 가시로부터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켜낼 수 있다. 장미에게 가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가시가 있었기에 장미의 아름다움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함께 뾰족한 가시를 가지고 있는 장미는 모순적이다.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시를 가지고 있는 장미는 오늘 하루도 스스로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다른 장미가 가지고 있는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 열심히 살아간다. 장미의 꽃말처럼 장미도 열렬히 사랑하며 살아간다. 장미도 상처를 받는다. 상처를 받아서 가시를 더 곧게 세울 때도 있지만 그 상처를 금세 잊고 또 다시 사랑한다. 정열적인 장미는 사랑할 때 비로소 살아갈 이유를 알게 된다.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장미와 비슷하다. 아름다운 장미의 가시처럼 모순적이다. 장미처럼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그와 동시에 사랑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항상 바쁜 일상을 원하지만 동시에 여유로움을 원한다. 한가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막상 한가하면 불안해 한다. 우리도 장미와 같이 사랑할 때 살아갈 이유를 알게 된다. 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끼칠 때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름다움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가시를 숨기기도 한다. 우리도 장미처럼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시를 곤두세운다. 

우리에게 가시가 있으므로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 모두 가시를 외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시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 가시가 있어야 우리의 삶은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강해질 수 있다. 우리는 가시로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찌를 수도 있다. 가시 때문에 난 상처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쓰리고 아프다.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우리는 마음이 약해지기도 한다. 계속 상처의 고통이 느껴질 것 같고, 끝 없는 고통일 것이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시의 상처를 통해 견고해질 수 있다. 상처를 잘 보듬으면 상처에 피가 멈추고 다시 새살이 돋는 것처럼 우리도 가시의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 스스로 나아지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 상처를 보듬다보면 다시 새살이 돋는다. 우리는 새살이 돋는 것을 보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힘차게 살아가야 한다. 

가시가 따갑다고 가시를 피해서는 안 된다. 가시를 피하는 순간 우리는 가시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우리는 딱 그 정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가시가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한다. 많이 넘어지게 한다. 그러나 장미는 가시가 많을수록 더 향기롭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장미도 우리도, 가시가 많을수록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인생에도 가시가 많아야 한다. 가시가 많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가시를 통해 우리는 더 강해지고, 성장하고 있다.


둥지 탈출 

우리는 오늘도 익숙한 듯 하루를 살아간다. 사실 사람들은 모두가 처음 사는 인생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서툴고, 어렵다. 갓난아이는 갓난아이대로 어렵고,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렵다.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어렵고, 어른은 어른대로 어렵다. 이처럼 삶은 모두가 처음이다. 누구나 이 세상에서는 아마추어다. 갓난아이가 처음으로 세상으로 나와 낯선 이 세상을 두려워 하듯 어른도 처음으로 경험하는 어른이 두렵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다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더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서툰 사람들끼리 모여 아름다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실패자가 아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감정을 선물한다. 새로움과 동시에 오묘한 감정은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고, 미래를 꿈꾸게 한다. 년도가 바뀌면서 나이 하나 더 먹는다는 것은 누군에게나 큰 의미일 것이다. 특히 아홉수인 우리들에게는 12월 31일은 만감이 교차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어른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부담감과 책임감 또한 선물한다. 아직 어른이라는 무게는 나에겐 무겁게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둥지는 태어나면 당연한 듯 있는 것이다. 둥지를 억지로 받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는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태어나자마자 둥지를 떠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평생 둥지에 기댈 수 있다. 둥지는 우리가 살아갈 동안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우리는 그저 둥지 안에서 쑥쑥 자라면 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둥지는 언제나 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묵묵히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직 불완전한 새가 나무 위에서 떨어지려고 하면 둥지는 새가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었고, 매서운 바람이 새를 아프게 할 때 둥지는 따뜻한 짚으로 새의 온도를 유지시켜주었다. 

이제 나는 곧 둥지를 탈출해야 한다. 둥지를 탈출한다는 것은 새에게도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낯선 곳에 혼자 나아가는 것은 설레는 일이지만 한편 두려운 도전이기도 하다. 스스로 날 수 있도록 어미새가 아기새를 높은 곳에서 밀어주듯, 우리도 스스로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둥지에서 떨어지기 무섭다며 겁만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새는 절대 둥지를 떠날 수 없다. 그 새는 스스로 살아갈 능력도 없어진다. 아기새가 나는 연습을 하다가 둥지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떨어져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기새는 그 아픔을 이겨냄으로써 스스로 살아 더 강인한 새로 남을 수 있다. 아기새도, 나도, 처음은 두렵다. 아기새가 둥지 곁을 떠나지 못하듯, 엄마 곁에 계속 있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도 아기새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둥지를 떠날 때 새도 우리도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 곁에는 항상 우리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혼자 무거운 짐을 지지 않아도 된다. 아기새가 나는 연습을 할 때 어미새가 아기새를 바라보듯, 누군가가 나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응원이 있기에 실패가 두렵지 않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실패가 나쁜 것만은 아님을.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임을.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경험하고, 겪고 있는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몰라준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힘든 줄 착각한다. 내 아픔이 제일 큰 아픔인 마냥 다른 이들에게 위로를 구한다. 내가 처한 아픔에 공감조차 못해주는 사람들과, 미래에 다가올 아픔이 현재의 나를 더 두렵게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을 처음 살아가는 것임을. 모두가 서툴고, 우리 모두는 아마추어다. 

그러나 세상을 자세히 보면 따뜻한 곳이기도 하다.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여러 사람들의 많은 도움으로 살아왔다. 우리는 세상에서 받은 사랑을 가지고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며, 앞으로 겪을 힘든 일들을 그 사랑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세상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기대하게 만든다.


오르막 

그 길은 페달을 힘차게 돌리고 강한 햇빛으로 땀이 흥건해질 때 어쩌다 한 번 나타나는 내리막이다. 세상을 살면서 오르막길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는 오르막길을 만나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오르막을 오를 수 있도록 힘을 건네주는 내리막길 또한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르막이 보이면 그냥 오르라고. 안 만나고 싶다고 안 만날 수 있는 오르막이 아니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오르막을 만나야 한다. 

2년 전, 갑작스럽게 자전거로 제주도 한 바퀴를 계획했다. 짧은 시간 내에 완주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자전거와 자전거 길,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제주도를 간다는 것만으로도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햇빛이 날 감싸주며 그 사이에서 시원하게 바람이 부는 10월달에 제주도란. 닫아두었던 캐리어를 다시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제주도에서의 시간을 기대했다. 

겨우 비행기를 탄 우리는 근거없이 완주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찼다. 오랜만에 비행기 탄 기분은 정말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기분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 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니까. 비행기 창문 너머 보이는 구름들을 보면 내가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어제보다 더 맑게 개인 하늘의 구름은 스스로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푸른 도화지 위 하얀색 물감으로 그린 구름은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 자신을 뽐냈다. 선생님은 제주도가 오르막이 많은 곳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결코 쉽지 않을 일주라고 했다. 우리는 완주하리라 포부를 다짐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완주는 하고 죽을 것이라며. 

제주도의 아침은 그림 같았다. 하늘 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뭉게구름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작은 구름들이 모여서 하나의 큰 구름으로, 구름끼리 서로 뭉쳐 있었다. 서울에서는 하늘을 쳐다본 게 얼마나 되었던가. 일상 속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적이 있었나. 구름들은 각자의 매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었다. 작은 구름이 바람에게 흔들리지 않도록 큰 구름은 작은 구름을 지켜주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큰 구름과 작은 구름은 하나가 되었다.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으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됨이 바람과 함께 싹 날라가는 느낌이었다. 맑은 새소리가 제주도의 아침을 반겼고, 이슬이 잠시 맺혔다 간 아침의 온도는 자전거 타기에 딱 좋은 온도였다. 

첫코스는 바닷길을 달리는 것이었다. 제주도에서 타는 자전거는 우리집 앞 공원에서 타는 자전거와는 사뭇 달랐다. 바닷길 코스는 바다의 소금내와 거침없이 부는 바람 덕에 자전거를 탈 때마다 나의 심장을 더 뛰게 만들었다. 지금 여기가 제주도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온 힘으로 페달을 돌려도 맞바람 때문에 자전거가 좀처럼 빨리 나아갈 수 없었다. 

맞바람이 멈출 때까지 나는 자전거를 세워서 잠시 넋을 잃고 바다를 보았다. 바다를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나는 힘들면 쉬어갈 수 있다는 행복을 늦게 깨달은 것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던 바쁜 시간 속 잠시 나의 일상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와 목표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오르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게 정상인데 제주도는 달랐다. 오르막이 있으면 또 오르막이 있는 제주도의 자전거 길은 이마와 머리카락 사이에 땀을 더 맺히게 만들었다. 닦아도 흘러내리는 땀은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땀으로 모든 옷이 전부 흥건해질 때면 어느새 보이는 내리막이 땀으로 흥건해진 옷을 바람으로 말려주었다. 

오르막을 오를 때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끝인지도 몰랐다. 당장 눈 앞에 지금 올라가야할 그 오르막길 뿐이었다. 긴 시간 내 결국 우리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끝없이 올라간 오르막 위에서 잠시 내려 뒤돌아 보면 구불구불한 내리막이 보였다. 다같이 올라온 이 오르막 위에서 우리는 입가의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쉼을 가졌다. 

내리막이 보이면 지금까지 거침없이 페달을 돌리던 나의 다리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허락해 줄 수 있었다. 페달에 다리를 걸치고 힘을 빼면 다리의 근육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정말 수고했다고. 나는 허벅지의 근육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허벅지의 근육통은 너무나도 아팠지만 떠나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스스로 잘했다는 뿌듯함에 휩싸여 근육통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또 오르막이 나왔다. 정말 끝도 없이 나왔다. 제주도에서의 오르막은 당연하게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주도의 내리막은 정말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 번 나올까 말까 했다. 흔한 오르막길 중간에 어쩌다 한 번의 내리막길이 나를 더 힘들게 했지만, 어쩌다 한 번의 내리막이 나를 더 견고하게 만든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가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제주도를 완주할 수 있었다. 선생님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스스로 대견스럽게 여겼다. 제주도 일주를 마친 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은 나에게, 우리는 서로 무엇을 해도 잘 할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도전하라고. 오르막길이 있으면 언젠가 내리막길도 찾아올 것이라고. 포기만 하지 말라고. 

제주도에서 좋은 추억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한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철없는 십대이기도 했다.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 하는 수업과 끊임없이 생각해야 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십대 후반이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경사 높은 오르막을 만났다. 철없이 놀기만 좋아하는 나에게 어른들의 잔소리와 압박은 나에게 오르기 힘든 오르막길일 뿐이었다. 나도 스스로 오르막을 열심히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르막의 끝은 보이지도 않았다. 오르고 올라도 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열심히 달리고 달려도 진전이 없는 것이 절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페달을 돌리던 나의 다리는 힘조차 줄 수 없을 만큼 힘이 빠졌다. 흥건해진 나의 몸과 옷은 나를 더 축 쳐지게 만들었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럴 때면 나는 나의 제주도의 일주를 기억한다. 끊임없이 마주했던 오르막이 있다면 언젠가 내리막이 나에게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지금 나는 의미없는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르막으로 인해 죽을 듯 땀을 흘려도, 언젠가 내리막이 찾아와 흥건하게 젖은 나를 시원한 바람으로 말려준다는 것을. 시원한 바람과 함께 따뜻한 햇빛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준다는 것을. 



작품설명

나를 위한 온도, 그리고 시간

나는 열심히 살다가 지칠 때면 꼭 혼자 시간을 보낸다. 모든 사람들은 크고, 작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로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이 시간을 새벽의 고요함이라는 상징으로 표현하였다. 


장미

우리는 고통없이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삶에 고통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그 고통에 부딪히며 열심히, 또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다. 이 작품은 우리의 삶을 장미로, 삶의 고통을 가시로 표현하였다. 


둥지 탈출

이 작품에는 두 가지의 주제가 있다. 첫번째는, 우리는 모두가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실수도 많이 하고, 어려움도 많이 겪는다. 어쩌면 처음이니까 그게 당연한 것인데 사람들은 완벽함을 원한다. 그런 이들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우리는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두 번째는, 우리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돕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공허해하고, 외로워하며 살아가며 살아가지만 되돌아보면 우리는 결코 혼자 자라지 않았다는 것과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 많은 손길이 닿았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오르막

세상을 살다 보면 나에게 버거운 일들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좌절하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힘든 일과 어려운 일이 있지만 분명히 행복한 일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과, 우리는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오르막과 내리막이라는 상징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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